교실이 함께 세운 왕
엄석대 · 한병태 ·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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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의 질문엄석대의 권력은 누가 만들고 무엇이 무너뜨렸을까?
자료와 편집 정보
- 다루는 작품
-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중심 인물
- 엄석대 ↔ 한병태
- 글의 범위
- 작품 장면의 요약과 편집자의 해석입니다. 실제 사람의 진단이나 예측이 아닙니다.
- 작성·편집
- 사람 도감
- 화면 구성 점검
- 2026-10-02
- 정정 요청
- 정식 공개 전 접수 통로를 연결할 예정입니다.
시골 초등학교의 한 교실에 왕이 있었다. 5학년 아이들이 그 왕에게 물을 떠다 바쳤다.
33편에서 이 도감은 한병태를 윈스턴 스미스와 마주 세웠다. 그때 석대는 배경이었다. 이번에는 그 왕을 병태 앞에 직접 세운다. 줄을 세운 아이와, 그 줄에 들어간 아이. 그리고 이 편이 끝내 묻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한 교실이다.
서울에서 전학 온 한병태는 시골 학교의 5학년 교실에 들어간다. 그 반에는 급장 엄석대가 있다. 호적이 잘못되어 실제로는 또래보다 두세 살 많은 아이다. 석대는 선생님보다 더 큰 힘을 가졌다. 아이들은 그를 위해 물을 떠 오고, 그의 청소를 대신하고, 제 물건을 바친다.
시험 날에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제 답안지에 석대의 이름을 적는다. 그래서 석대는 늘 일등이다. 담임 선생님은 모른 척한다.
병태는 그것이 틀렸다고 여긴다. 혼자 맞선다. 석대의 잘못을 선생님께 알리지만 증거가 없다. 아이들은 아무도 병태 편에 서지 않는다. 병태는 따돌림을 당하고, 하나씩 빼앗기고, 점점 외톨이가 된다.
그리고 병태는 무릎을 꿇는다. 석대의 편에 들어간다. 그러자 모든 것이 편해진다. 석대는 병태를 아꼈고, 병태는 그 곁에서 누리는 것들에 익숙해진다.
그 뒤 병태는 석대가 시험지를 바꿔 쓰게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알리지 않는다.
6학년이 되어 새 담임이 온다. 그는 시험지에서 석대가 해 온 일을 알아채고, 석대에게 매를 든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아는 것을 모두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아이들은 한꺼번에 입을 연다. 석대에게 당한 일들을 하나둘 쏟아 낸다. 병태만 끝까지 입을 다문다. 아이들은 그를 석대의 졸개라 부른다.
석대는 급장 선거에서 떨어지자 욕을 내뱉으며 교실을 뛰쳐나간다. 한동안 아이들에게 앙갚음을 하다가, 아이들이 여럿이 함께 맞서자 읍내에서 자취를 감춘다.
몇십 년 뒤, 어른이 된 병태는 세상이 그 교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가족과 떠난 여행길에, 기차역 앞에서 경찰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석대를 본다. 그날 밤 그는 운다.
석대는 교실에서 누구보다 힘이 셌다. 그런데 새 담임이 한 번 흔들자, 그 힘은 하루 만에 무너졌다.
그렇다면 그 힘은 처음부터 석대의 것이었을까. 아니면 아이들이 쥐여 준 것이었을까.
왕을 만든 것은 왕이었을까,
교실이었을까.
왜 일곱 갈래로 읽을까
두 사람을 일곱 개의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한 교실의 왕과, 그 왕에게 맞섰다가 무릎을 꿇은 아이다. 한 가지 성격이나 사건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않기 위해 선택·감정·상황·책임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비춰 본다. 어느 한 칸이 정답이거나 더 깊은 단계는 아니다.
줄을 세운 아이, 줄에 들어간 아이
줄을 세운다. 누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를 정하고, 그 줄을 지킨다.
33편 그대로. 안에 방이 하나 더 있다. 그 방에 옳고 그름을 따로 두고 산다.
ESTJ는 이 도감에서 줄을 세우는 칸이라 불렀다. 12편의 채치수는 줄을 세워 팀을 만들었고, 27편의 박 사장은 줄을 세워 거리를 만들었다. 석대는 줄을 세워 나라를 만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그 나라에는 질서가 있었다. 석대가 급장이던 교실은 조용했고, 싸움이 없었고, 청소가 잘되었다. 담임 선생님도 그것을 좋아했다. 줄을 세우는 재주는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 팀이 되기도, 거리가 되기도, 나라가 되기도 한다.
같은 줄 세우기가
팀이 되기도, 나라가 되기도 한다.
병태는 그 줄 밖에 선 아이였다. 안에 방이 하나 더 있는 사람은, 모두가 서 있는 줄을 한 걸음 떨어져서 본다. 그래서 먼저 알아챈다. 이 줄은 틀렸다고.
무릎을 꿇은 아이는 왜 그 교실을 좋아하게 되었나
석대는 교실을 겁으로만 다스리지 않았다. 따르는 아이에게는 작은 것을 나눠 주었다. 청소를 빼 주고, 편을 들어 주고, 곁에 앉혀 주었다. 겁과 특혜를 함께 쥔 사람 앞에서 아이들은 쉽게 줄을 선다.
병태가 무릎을 꿇은 뒤의 이야기가 이 편에서 가장 불편하다. 그는 석대의 교실을 좋아하게 된다. 억지로 참은 것이 아니라, 정말로 편안해졌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어는 사람이 제 믿음과 제 행동이 어긋날 때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그럴 때 사람은 대개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 믿음을 바꾼다. 인지 부조화다.
행동을 바꿀 수 없을 때,
사람은 믿음을 바꾼다.
틀렸다고 믿으면서 그 교실에 무릎을 꿇고 사는 것은 너무 괴롭다. 그래서 병태는 믿음 쪽을 조금씩 옮겼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이 편이 한 아이를 탓하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것은 병태만의 일이 아니라, 사람이 버티는 방식이다.
덩굴이 감은 큰 나무
곧고 높다. 그 그늘에서 다른 것들이 산다.
33편 그대로. 기댈 나무를 감고 오른다.
33편에서 이 도감은 병태를 을목, 덩굴로 읽었다. 그리고 《적천수》의 구절을 댔다. 덩굴이 큰 나무를 감으면 봄에도 가을에도 산다(藤蘿繫甲). 그때 병태가 감은 나무가 석대였다. 두 사람 모두 지어낸 인물이라 성격의 물상으로 읽었다.
그러니 석대는 갑목이다. 교실에서 가장 크고 곧은 나무. 그 그늘이 넓어서, 그 아래서는 아무도 비를 맞지 않았다.
그런데 33편은 그 구절에 경고 하나를 함께 읽었다. 기둥이 넘어지면 덩굴도 같이 넘어진다고. 새 담임이 석대를 베었을 때, 병태 안의 무언가도 함께 쓰러졌다.
큰 나무가 베이던 날,
그 나무를 감은 덩굴도 쓰러졌다.
사슬을 쥔 손, 사슬에 묶인 손
황제. 교실의 옥좌.
악마. 사슬을 쥔 자.
탑. 하루 만에 무너진 나라.
33편 그대로.
악마. 사슬에 묶인 자.
심판. 몇십 년 뒤의 눈물.
두 사람의 가운데 장이 같다. 악마 카드다. 이 카드 한가운데에는 커다란 형상이 앉아 있고, 그 아래 두 사람이 목에 사슬을 걸고 서 있다.
석대는 위에 앉은 쪽이었고, 병태는 아래 묶인 쪽이었다. 같은 카드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섰다. 그리고 그 카드 속 사슬은 헐겁다. 아래 선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벗을 수 있을 만큼.
같은 악마 카드였다.
한 아이는 사슬을 쥐었고, 한 아이는 사슬을 목에 걸었다.
석대의 마지막 장이 탑인 까닭이 거기 있다. 사슬이 헐거웠기에 나라는 하루 만에 무너졌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사슬을 벗자, 쥐고 있던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모두의 즐거움이 그로 말미암는다
석대에게는 열여섯 번째 괘, 뇌지예(豫)를 댄다. 우레가 땅에서 솟아 떨치는 모양, 즐거움과 따름의 괘다.
석대의 교실이 이 괘 그대로다. 교실의 평화와 즐거움이 모두 석대에게서 나왔다. 아이들은 의심하지 않았고, 그래서 비녀에 머리카락이 모이듯 그 곁으로 모였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어둠 속의 즐거움이었다. 시험지를 바꿔 쓰고 물건을 바치는 위에 세운 평화. 효사는 그래도 바꾸면 허물이 없다고 한다. 석대는 끝내 바꾸지 않았다. 교실이 대신 바꾸었다.
어둠 속의 즐거움은
불이 켜지는 날 끝난다.
병태에게는 33편에서 택뢰수, 따름의 괘를 댔다. 그 괘의 대답은 구오에 있었다. 무엇을 따를지 정하는 마지막 기준은 사람도 세력도 아닌 선함이라고. 병태는 사람을 따랐다. 그 사람이 옳은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벌을 준 선생님도 매를 들었다
이 소설은 1987년에 나왔다.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을 제 손으로 뽑게 해 달라고 외치던 해다. 그래서 많은 독자는 석대의 교실을 한 나라의 모습으로 읽었다. 석대는 독재자였고, 아이들은 그 아래 사는 백성이었고, 새 담임은 그 나라를 끝낸 바깥의 힘이었다.
그런데 그 바깥의 힘이 한 일을 잘 보아야 한다. 새 담임은 석대의 나라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그 방법은 매였다. 석대에게, 대신 시험을 쳐 준 아이들에게, 나중에는 석대의 앙갚음을 겁내는 아이들에게까지 매를 들었다.
독재를 끝낸 손에도
매가 들려 있었다.
새 담임이 옳았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석대의 나라는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만 병태가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을 그 교실처럼 느낀 까닭 하나가 여기 있다. 그 나라를 끝낸 것조차 아이들 스스로가 아니라, 더 큰 힘이었다.
자발적 복종
열여섯 세기 프랑스의 젊은 법학도 에티엔 드 라 보에시는 한 권의 짧은 글을 남겼다. 『자발적 복종』이다. 그는 물었다. 한 사람의 폭군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을 다스리는가. 그리고 답했다.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기 때문이라고. 폭군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싸움조차 필요 없다. 따르기를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고. 뜻을 줄이면 그렇다.
석대의 나라가 꼭 그랬다. 새 담임이 한 번 흔들자 아이들이 한꺼번에 따르기를 그만두었다. 그러자 나라는 하루 만에 사라졌다. 석대의 힘은 처음부터 석대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날마다 조금씩 쥐여 준 것이었다.
왕을 만든 것은
날마다 무릎을 꿇은 교실이었다.
그렇다면 몇십 년 뒤 병태가 흘린 눈물은 무엇이었을까. 끌려가는 석대가 가여워서였을까. 이 도감은 다르게 읽는다. 그는 석대에게서 제 열두 살을 보았다. 스스로 무릎을 꿇었던 교실, 그리고 그 교실을 끝낸 것이 자기가 아니었다는 것을.
한 교실의 왕과 그 왕에게 무릎을 꿇은 아이를 두고, 돋보기들은 왕보다 교실을 먼저 본다.
왕을 만든 것은 왕이 아니라,
날마다 무릎을 꿇은 교실이었다.
왕은 하루 만에 무너졌다. 그 왕을 날마다 세운 것은 교실이었다
그리고 엄석대는 괴물이 아니다. 그는 또래보다 몇 살 많았다지만 그래도 초등학생이었다. 그 나이에 교실 하나를 다스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재주를 알아보고 막아 줄 어른이 곁에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한 일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나라를 아이 혼자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볼 수 있다.
줄을 세운 아이와, 그 줄에 들어간 아이.
같은 악마 카드에서 하나는 사슬을 쥐었고, 하나는 목에 걸었다. 사슬은 헐거웠다.
교실이 따르기를 그만두자, 왕은 하루 만에 사라졌다.
너는 지금 어떤 줄에 서 있나.
그 줄은 누가 세웠나.
줄은 대개 누군가 세운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날마다 서 있어서 계속 줄이다. 틀렸다고 알면서도 그 줄에 서 있다면, 그것은 네가 약해서가 아니다. 혼자 벗어나기가 그만큼 춥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은 해 두어야 한다. 새 담임 앞에서 한꺼번에 석대의 잘못을 쏟아 낸 아이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그들을 비겁하다고 부르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그날 처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말할 수 없던 날들의 침묵까지 그들에게만 지울 수는 없다. 그날 홀로 입을 다문 병태는 그 아이들을 변절자라 여겼다. 이 도감은 거기까지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하나. 네가 따르기를 그만두면 무너질 것이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네가 세워 주던 것이다.
이 화면에 대하여
33편 노트에서 따로 쓰겠다고 적어 둔 짝이다. 한병태의 배정(INFP, 을목, 정의·악마·심판, 택뢰수)은 33편 그대로 두었다.
두 사람 모두 지어낸 인물이라 명리는 성격의 물상으로 읽었다. 석대를 갑목으로 읽은 것은 33편에서 병태가 감은 나무를 석대라고 한 것과 이어 두었다. 《적천수》 갑목 구절, 주역 뇌지예의 괘사·효사는 원문에서 옮겼고, 풀이는 이 도감이 정리했다. 페스팅어와 라 보에시의 생각은 뜻만 줄여 옮겼다.
석대의 교실을 한 나라의 모습으로 읽는 것은 널리 퍼진 해석이다. 체벌 금지와 학교폭력예방법은 뜻을 줄여 적었다. 석대는 아이들을 짓누른 인물이라 도감의 원칙대로 「괴물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함께 넣었다. 판정 금지 문장은 입을 연 반 아이들을 향한다. 소설의 문장은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같은 칸, 같은 천간, 같은 카드와 괘를 받은 사람들은 도감 지도에 모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