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아이 앞에서 멈췄다
에드몽 당테스 · 히스클리프 · 『몬테크리스토 백작』 × 『폭풍의 언덕』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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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의 질문평생을 건 복수를 왜 둘 다 아이 앞에서 멈췄을까?
자료와 편집 정보
- 다루는 작품
- 몬테크리스토 백작 × 폭풍의 언덕
- 중심 인물
- 에드몽 당테스 ↔ 히스클리프
- 글의 범위
- 작품 장면의 요약과 편집자의 해석입니다. 실제 사람의 진단이나 예측이 아닙니다.
- 작성·편집
- 사람 도감
- 화면 구성 점검
- 2026-10-02
- 정정 요청
- 정식 공개 전 접수 통로를 연결할 예정입니다.
두 사람은 평생을 복수에 걸었고, 둘 다 끝내 그 복수를 제 손으로 내려놓았다.
바닷가 감옥에서 열네 해를 보내고 나와 백작이 된 사내, 그리고 황야의 집에서 하인으로 자라다 부자가 되어 돌아온 사내. 둘 다 오래 계산했고, 둘 다 상대를 거의 다 무너뜨렸다. 그런데 마지막 한 걸음 앞에서, 두 사람은 똑같이 아이를 보았다.
1815년, 프랑스 남쪽의 항구 마르세유. 열아홉 살 항해사 에드몽 당테스는 곧 선장이 되고, 사랑하는 메르세데스와 결혼할 참이다. 그런데 그를 시기한 동료 당글라르가 밀고장을 쓰고, 메르세데스를 사랑하던 페르낭이 그것을 부친다.
결혼식 피로연 자리에서 당테스는 끌려간다. 사건을 맡은 검사 대리 빌포르는 그 편지가 제 아버지 앞으로 된 것임을 알아채고, 자기를 지키려고 편지를 태운 뒤 당테스를 재판도 없이 바다 위의 이프 성 감옥에 가둔다.
감옥에서 그는 늙은 파리아 신부를 만난다. 신부는 그에게 여러 나라 말과 학문을 가르치고, 누가 그를 팔았는지 함께 풀어내 주고, 몬테크리스토 섬에 숨은 보물을 알려 준다. 열네 해 만에 신부가 숨을 거두자, 당테스는 신부의 시신 대신 자루에 들어가 바다로 던져지는 방법으로 빠져나온다.
그사이 아버지는 굶주려 세상을 떠났고, 메르세데스는 페르낭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보물을 손에 넣은 당테스는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새 이름으로 파리에 나타난다. 그리고 세 사람을 하나씩 무너뜨린다.
영국 북쪽의 황야, 바람이 거센 언덕 위의 집. 언쇼 씨가 먼 도시의 거리에서 굶주리던 고아 하나를 데려온다. 성도 없는 그 아이에게는 일찍 죽은 아들의 이름, 히스클리프가 붙는다.
딸 캐서린은 그와 황야를 뛰어다니며 자라고, 아들 힌들리는 그를 미워한다. 언쇼 씨가 죽자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끌어내린다.
캐서린은 이웃의 부잣집 아들 에드거 린턴과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히스클리프와 결혼하면 자기가 낮아진다는 대목까지만 엿들은 채 그는 집을 떠난다. 캐서린이 바로 그다음에, 그가 자기보다 더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 것은 끝내 듣지 못한다.
세 해 뒤 그는 부자가 되어 돌아온다. 에드거의 누이와 결혼해 모질게 대하고, 노름빚에 무너진 힌들리에게서 집을 빼앗고, 힌들리의 아들 헤어튼을 자기가 당한 대로 글도 모르게 키운다. 캐서린은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나고, 그는 그 딸 캐시마저 제 아들과 억지로 혼인시켜 두 집안의 재산을 모두 손에 넣는다.
당테스는 원수의 아내가 제 어린 아들까지 데리고 독을 마신 뒤, 그 아이의 주검 앞에서 자기가 너무 멀리 왔다고 느낀다. 그리고 남은 원수 하나를 용서하고 놓아준다.
히스클리프는 원수의 아들 헤어튼과 캐서린의 딸 캐시가 서로 마음을 여는 것을 본다. 두 아이의 눈에서 캐서린을 보고, 복수할 힘은 남아 있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먹지 않다가 죽는다.
평생을 건 복수를
왜 둘 다 아이 앞에서 멈췄을까.
왜 일곱 갈래로 읽을까
두 사람을 일곱 개의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같은 칸에 선, 복수를 멈춘 두 사람이다. 한 가지 성격이나 사건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않기 위해 선택·감정·상황·책임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비춰 본다. 어느 한 칸이 정답이거나 더 깊은 단계는 아니다.
복수를 설계한 두 사람
감옥에서 열네 해를 생각하고, 나와서 십 년 가까이 준비했다. 원수마다 다른 칼을 골랐다.
스무 해가 넘도록 한 걸음씩. 두 집안의 재산을 결혼과 빚으로 옮겨 왔다.
이 칸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섰다. 문동은은 열여덟 해를 들여 복수를 짰고, 스네이프는 평생 한 사람만 마음에 품었다. 당테스는 문동은을, 히스클리프는 스네이프를 닮았다.
INTJ의 복수는 불같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차갑게, 오래, 설계도를 그리듯 온다. 두 사람 모두 원수를 칼로 찌르지 않았다. 원수가 가장 아끼던 것, 이름과 재산과 가문이 저절로 무너지도록 판을 짰다.
설계도는 완벽했다.
다만 그 안에 아이는 그려져 있지 않았다.
계산하는 사람들은 흔히 판 위의 말만 본다. 판 바깥에 서 있던 아이들이 판 안으로 걸어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의 계산은 거기서 멈추었다.
신의 손을 자처한 사람, 반쪽 문장을 들은 사람
당테스는 스스로를 하늘의 뜻을 대신 치르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나쁜 자는 벌을 받고 착한 이는 갚음을 받아야 한다. 그 일을 하늘이 하지 않으니 자기가 한다고. 열네 해의 어둠을 견디게 해 준 것도 그 믿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이 한 아이의 주검 앞에서 무너진다. 원수의 아내가 저지른 일이었지만, 그 아내에게 독에 대한 앎을 슬며시 건넨 것은 백작 자신이었다. 어린 아이는 누구에게도 잘못한 적이 없었다.
하늘의 손이라 믿었는데,
그 손에 아이의 피가 묻었다.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반쪽 문장에서 시작한다. 그는 캐서린의 말을 절반만 들었다. 그와 결혼하면 자기가 낮아진다는 데까지. 그 뒤에 이어진, 그가 자기보다 더 자기 자신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그러니 그의 스무 해는, 어쩌면 끝까지 듣지 못한 한 문장 위에 세워진 것이다. 버림받았다고 믿은 아이가 버린 사람들에게 되갚는 이야기. 그리고 그 되갚음은 그가 당한 모양 그대로였다. 하인으로 끌어내려진 아이가, 헤어튼을 하인으로 키웠다.
당한 사람은
당한 모양 그대로 되갚기 쉽다.
그런데 헤어튼은 히스클리프를 미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랐다. 그가 죽던 날 밤, 곁에 앉아 소리 죽여 운 사람은 헤어튼 하나뿐이었다.
불에 벼려진 쇠, 바람에 마른 바위
다듬어지지 않은 강한 쇠. 불을 만나야 칼이 된다.
무겁고 움직이지 않는다. 한번 자리 잡으면 바뀌지 않는다.
옛 책 《적천수》는 경금을 두고 여덟 구절을 남겼다. 그 가운데 두 구절이 당테스의 평생을 그대로 따라간다.
이 책에 주석을 단 임철초는 날카로워지는 길을 이렇게 풀었다. 丁火陰柔 不與庚金爲敵 良冶銷鎔 遂成劍戟. 등불처럼 여린 불은 쇠와 맞서 싸우지 않고, 좋은 대장장이처럼 천천히 녹이고 두드려 마침내 칼과 창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프 성의 어둠 속에서 당테스를 벼린 불은 파리아 신부였다. 신부는 그와 다투지 않았다. 말과 셈과 역사를 가르치며 열아홉 살 선원을 천천히 녹이고 두드렸다. 그리고 그 대장간에서 나온 것은, 과연 한 자루의 칼이었다.
감옥은 그를 부수지 못했다.
오히려 칼로 벼려 냈다.
그 칼이 맑아진 것은 물을 만나고 나서다. 그는 자루에 담겨 바다로 던져져 살아 나왔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바다로 떠났다. 28편의 산티아고 노인도 바다에 씻긴 같은 쇠였다. 09편의 자베르는 물을 만나지 못한 쇠였고, 끝내 부러졌다.
히스클리프는 무토, 큰 산이고 바위다. 캐서린은 에드거를 향한 마음을 계절 따라 바뀌는 숲의 잎에, 히스클리프를 향한 마음을 땅 밑에 박힌 오래된 바위에 비긴 적이 있다. 눈에 잘 띄지 않아도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적천수》의 무토 구절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도감은 이를, 산의 건강을 정하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물기라는 뜻으로 읽는다. 캐서린이 곁에 있을 때 그 바위에는 물기가 있었다. 그녀를 잃고 나서 스무 해, 그는 분노의 불로만 제 땅을 달구었다. 그 땅 위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했다. 이사벨라도, 제 아들 린턴도, 헤어튼도.
메마른 산 위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못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 메마른 땅 위에서 두 아이가 서로에게 글을 가르치며 싹을 틔웠다. 산이 일부러 적신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물기를 찾아낸 것이다.
탑에서 별까지, 연인에서 죽음까지
탑. 결혼식 날의 체포. 하루아침에 무너진 삶.
정의. 복수를 정의라고 믿은 백작의 저울.
별. 기다림과 희망. 무너진 뒤에 뜨는 별.
연인. 캐서린, 그리고 그녀가 고른 다른 길.
악마. 스무 해의 복수라는 사슬.
죽음. 먹지 않다가 맞는 끝. 그리고 다음 사람들의 시작.
두 사람의 가운데 장을 나란히 놓아 보자. 정의와 악마. 당테스는 자기가 저울을 들었다고 믿었고, 히스클리프는 스스로 사슬을 감았다. 그런데 히스클리프가 감은 사슬은 누가 채워 준 것이 아니었다. 제 손으로 풀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의의 저울도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당테스의 저울은 아이 하나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기울었다.
한 사람은 저울을 내려놓고 별을 보았고,
한 사람은 사슬을 벗으며 눈을 감았다.
당테스의 이야기는 별로 끝난다. 탑이 무너진 뒤에 뜨는 별, 기다리고 바라는 마음. 히스클리프의 이야기는 죽음으로 끝나지만, 죽음 카드는 끝이면서 바뀜이다. 그가 눈을 감은 뒤에야 그 집에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덜어 내는 괘, 썩은 것을 고치는 괘
당테스에게는 예순네 괘 가운데 마흔한 번째, 산택손(損)을 댄다. 덜어 냄의 괘다. 덜어서 보태는 역설을 담았다. 산(☶) 아래 못(☱)이 있어, 못을 덜어 산을 높이는 모양이다.
열네 해를 빼앗긴 사람에게 덜어 내라는 괘는 가혹해 보인다. 그런데 이 괘가 첫째로 덜어 내라는 것은 돈도 세월도 아니다.
풀어 말하면, 덜어 낼 첫 품목은 돈이 아니라 감정이다. 당테스가 마지막에 한 일이 그것이었다. 파산한 당글라르를 굶주림 끝에 놓아주고, 메르세데스의 아들을 살려 두고, 헤어질 뻔한 젊은 연인에게 새 삶을 열어 주고 떠났다.
이 효가 날카롭다. 고칠 것을 천천히 고치는 동안 병은 그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에두아르의 죽음 앞에서 당테스는 제 병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리고 서둘러 덜어 냈다. 복수가 그의 전부가 되기 직전이었다.
덜어 낼 첫 품목은
분노였다.
히스클리프에게는 열여덟 번째, 산풍고(蠱)를 댄다. 벌레 먹음, 곧 아버지가 물려준 일의 썩은 데를 고치는 괘다. 바람(☴)이 산(☶)에 막혀 고이니 물건이 썩고 벌레가 스는 모양이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만들었고, 히스클리프는 그 썩은 것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헤어튼에게 물려주었다. 놓아둔 폐단은 한 세대를 건너 다시 자랐다.
그 썩은 것을 고친 것은 다음 세대였다. 캐시는 글을 모르는 헤어튼에게 글을 가르쳤고, 헤어튼은 그것을 배웠다. 효사대로라면, 물려받은 그늘을 고치는 일은 윗사람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라 윗사람을 완성하는 일이다. 헤어튼이 히스클리프의 주검 곁에서 운 것도,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썩은 것을 고친 사람은
복수한 사람이 아니라 복수를 당한 아이들이었다.
법이 버린 사람, 법을 쓴 사람
당테스를 가둔 것은 법이 아니었다. 법을 맡은 한 사람이었다. 빌포르는 제 자리를 지키려고 재판도 없이 스무 살도 안 된 선원을 바다 위 감옥에 묻었다. 그 시절 프랑스는 왕과 나폴레옹 사이를 오가던 때라, 누군가를 반역자로 몰기는 쉬웠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있다. 법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복수에는 법과 제도를 썼다. 페르낭의 옛 배신은 귀족원의 심문 자리에서 드러났고, 빌포르의 옛 죄는 법정에서 드러났다. 당글라르는 은행과 돈의 규칙 안에서 무너졌다.
법에게 버림받은 사람이
법을 칼로 썼다.
히스클리프도 그랬다. 그는 누구의 목에도 칼을 대지 않았다. 빚 문서와 결혼으로 두 집안의 재산을 옮겨 왔다. 그 시절 영국에서는 결혼한 여자의 재산이 남편의 것이 되었다. 딸에게 곧바로 땅이 넘어가기 어렵게 짜인 상속도 있었다. 이 소설의 상속 대목은 훗날 법률가가 따로 분석할 만큼 꼼꼼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 계급이 있었다. 성도 없는 고아는 주인이 죽자 곧바로 하인이 되었다. 캐서린이 그와 결혼하면 낮아진다고 말한 것도, 그녀가 모질어서라기보다 그 시대의 셈법이 그랬기 때문이다.
사람을 끌어내린 것은 계급이었고,
그가 되갚는 데 쓴 것은 법이었다.
다른 나라, 다른 시대였다면 어땠을까. 재판이 제대로 열렸다면 당테스는 열네 해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고아가 하인이 되지 않는 집이었다면 히스클리프는 엿듣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두 복수는 모두, 먼저 무너진 제도 위에서 자랐다.
복수는 어디서 멈춰야 하나
옛말에 복수는 차갑게 먹을수록 맛있는 음식이라는 말이 있다. 두 사람은 그 말대로 했다. 오래 식혀서, 천천히. 그런데 둘 다 그 음식을 끝까지 먹지 못했다.
복수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두고 옛사람들은 오래 다투었다. 눈에는 눈이라는 오래된 법도, 본디는 되갚음을 부추기는 말이 아니라 당한 만큼만, 그 이상은 안 된다는 한계를 긋는 말이었다는 풀이가 있다. 복수의 가장 큰 위험은 멈출 줄 모르는 데 있다는 뜻이다.
두 사람에게 그 한계를 그어 준 것은 법도 철학도 아니었다. 아이였다. 당테스에게는 아무 잘못 없이 죽은 아이가, 히스클리프에게는 아무 잘못 없이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두 아이가.
복수는 원수를 겨누지만,
언제나 아이들 쪽으로 흘러간다.
06편의 문동은도 열여덟 해 만에 돌아왔을 때, 하필 원수의 딸이 다니는 반의 담임이 되었다. 복수의 판 위에는 처음부터 아이가 서 있었던 셈이다. 당테스와 히스클리프는 그것을 늦게, 그러나 끝내 알아보았다.
그러니 둘 중 누가 옳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둘 다 너무 멀리 갔다. 다만 둘 다, 돌아서는 자리를 알아보았다.
평생 복수를 설계한 두 사람을 두고, 돋보기들은 설계도에 빠진 것을 찾는다.
복수를 끝낸 것은 복수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앞에 선 아이들이었다.
평생을 건 복수를, 아이 앞에서 내려놓았다
감옥에서 벼려진 칼과, 분노에 마른 바위. 둘 다 차갑게 오래 복수를 짰다.
한 사람은 죽은 아이 앞에서 저울을 내려놓았고, 한 사람은 사랑하게 된 두 아이 앞에서 사슬을 풀었다.
칼은 바다로 떠났고, 바위 위에는 아이들이 싹을 틔웠다.
네가 되갚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되갚음은 누구에게까지 흘러갈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되갚고 싶어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그 마음을 부끄러워할 까닭은 없다. 다만 되갚음은 좀처럼 원수 한 사람에게서 멈추지 않는다. 그 곁의 사람에게로, 다음 사람에게로 흘러간다. 그 끝에 누가 서 있는지 한 번쯤 들여다볼 만하다.
당테스를 기다리지 못하고 페르낭과 결혼한 메르세데스가 잘못한 게 아니다. 약혼자는 소식 없이 사라졌고, 그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기다릴 이유가 하나씩 지워지던 곳에서, 곁에 남은 사람의 손을 잡았을 뿐이다. 그리고 훗날 그녀는 제 아들을 살려 달라고 백작 앞에 섰다. 그녀도 끝까지 누군가를 지키려 한 사람이었다.
히스클리프는 괴물이 아니다. 거리에서 굶주리던 아이였고, 한집에서 자란 형에게 하인으로 끌어내려진 아이였고, 사랑하는 사람의 말을 절반만 들은 청년이었다. 그가 한 일을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일들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볼 수 있다.
네가 되갚기를 멈추게 할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이 화면에 대하여
복수를 멈춘 두 사람을 같은 칸에 세웠다. 히스클리프는 흔히 INTJ로 읽히지만, 다른 칸으로 읽는 해석도 있다.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와 헤어튼, 제 아들 린턴에게 모질게 한 가해자라서, 도감의 원칙대로 「괴물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함께 넣었다. 판정 금지 문장은 메르세데스를 향한다.
명리의 《적천수》 경금·무토 구절과 임철초의 주석, 주역 산택손과 산풍고의 상전·효사는 원문에서 옮겼고, 풀이는 이 도감이 정리했다.
두 소설의 대사와 마지막 편지의 말은 그대로 옮기지 않고 뜻만 옮겼다. 히스클리프가 모은 돈의 출처는 원작에서도 밝혀지지 않아 적지 않았다.
같은 칸, 같은 천간, 같은 카드와 괘를 받은 사람들은 도감 지도에 모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