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주고받고
죽였다
이방원 · 정몽주 · 고려 말 · 역사
읽기 안내 · 작품 장면과 해석을 나누어 봅니다
어디부터 읽어도 괜찮습니다
이번 글의 질문서로 다른 질서를 옳다고 믿은 두 사람은 왜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됐을까?
자료와 편집 정보
- 다루는 작품
- 고려 말 · 역사
- 중심 인물
- 이방원 ↔ 정몽주
- 글의 범위
- 작품 장면의 요약과 편집자의 해석입니다. 실제 사람의 진단이나 예측이 아닙니다.
- 작성·편집
- 사람 도감
- 화면 구성 점검
- 2026-10-02
- 정정 요청
- 정식 공개 전 접수 통로를 연결할 예정입니다.
마음을 떠보는 노래 한 수, 그것을 물리치는 노래 한 수.
그리고 얼마 뒤, 돌다리 위에서 한 사람이 죽는다. 노래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이 도감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만으로 지어진 첫 편이다.
고려 말, 나라가 썩었다는 데에는 누구도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정몽주 역시 나라를 고치자고 평생을 외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갈림길이 하나 생긴다. 고쳐서 쓸 것인가, 갈아엎을 것인가.
정몽주는 고치자는 쪽이었다. 왕조는 그대로 두자는 것이다. 이방원은 갈아엎자는 쪽이었다.
어느 날 정몽주가 이방원의 집을 찾아간다. 병문안이라는 구실이었지만, 그는 형세를 살피러 간 것이었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방원이 노래를 한 수 부른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무슨 상관이냐, 우리도 서로 얽혀 오래오래 살아 보자는 뜻이다. 마음을 떠보는 노래였다.
정몽주가 답가를 부른다. 이 몸이 죽고 또 죽어 백 번을 다시 죽는다 해도, 그 마음만은 변할 리 없다는 뜻이다. 물리치는 노래였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 선죽교 위에서 그는 목숨을 잃는다. 같은 해에 조선이 선다.
※ 두 노래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판본마다 표기가 다르다. 여기서는 그대로 옮기지 않고 뜻만 풀었다.
두 사람 모두 고려가 썩었다고 생각했다. 싸움은 병을 알아보는 데서가 아니라, 병을 다스리는 처방에서 났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정몽주를 충신으로 높인 것이 바로 조선이었다. 죽인 쪽이 그를 기렸다.
둘 다 옳았는데
왜 한쪽만 살아남았을까.
왜 일곱 갈래로 읽을까
두 사람을 일곱 개의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실제로 살았던 두 사람이다. 한 가지 성격이나 사건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않기 위해 선택·감정·상황·책임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비춰 본다. 어느 한 칸이 정답이거나 더 깊은 단계는 아니다.
끝이 보여서 안 움직인 사람
판을 짠다. 오래 기다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단번에 움직인다.
끝을 미리 본다. 왕조를 바꾸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보았다.
정몽주가 내다본 끝이 무엇이었는지가 이 편의 출발점이다.
신하가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선례는
한번 세워지면 다음에도 쓰인다.
그는 고려 왕실이 좋아서 지킨 것이 아니다. 규칙 하나가 깨지는 것을 본 것이다. 그리고 그 규칙이 깨지면, 새 왕조도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다.
그런데 INFJ라는 칸에는 치러야 할 값이 붙는다.
끝을 미리 보는 사람은,
끝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하기도 한다.
다음 장면이 눈에 선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고치자고만 했다. 이미 고칠 수 있는 때를 지나 버렸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갈리는 대목이다.
반대편은 꼭 그 거꾸로다.
끝이 보이면 발이 멈추기도 하고,
끝을 정해 두면 발이 빨라지기도 한다.
건너뛰어진 아들
이방원 쪽부터 보자. 선죽교 이야기는 잠시 미뤄 두어도 된다. 그보다 앞에 사건이 하나 있다.
새 나라를 세우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그였다. 그런데 세자 자리에 오른 것은 배다른 어린 동생이었다. 아버지가 그를 건너뛴 것이다.
이 도감에서 이런 모양새는 처음이 아니다.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증명하거나, 빼앗는다.
13편에서 토니는 증명하는 쪽으로, 로키는 빼앗는 쪽으로 갔다. 이방원은 먼저 빼앗고, 그다음에 증명했다. 왕이 된 뒤 남은 삶을 나라를 다잡는 데 쏟았으니까.
그리고 그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두려움이 하나 있었다.
자기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아는 사람은,
같은 길로 올라올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가 왕비의 친정붙이와 공신들을 없앤 까닭이 여기에 있다. 원한이 아니라 셈이었다. 그 길이 얼마나 쉬운지, 자기가 직접 걸어 보아서 알았으니까.
정몽주 쪽을 보자. 그는 알면서 그 집에 갔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갔고, 마음을 떠보는 노래를 듣고, 침묵이 아니라 노래로 물리쳤다. 그것은 제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이었다.
왜 그랬을까. 피하는 순간 지는 싸움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달아난 원칙은 더는 원칙이 아니게 되니까.
같은 불을 들고 땅에서 부딪혔다
⚠️ 두 사람 모두 태어난 시각이 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주 전체는 쓰지 않고, 태어난 해의 간지(년주)만 본다.
천간은 정화(丁火), 등불. 지지는 축토, 차고 젖은 흙이다.
천간은 같은 정화(丁火), 같은 등불. 지지는 미토, 마르고 뜨거운 흙이다.
⚠️ 학설 하나를 먼저 밝혀 둔다. 정몽주는 음력 섣달에 태어났다. 명리에서 새해를 입춘으로 치는 통설로 세면 아직 정축년이다. 그런데 새해를 동지로 치는 소수설로 세면 동지가 이미 지났으니 해가 바뀌어 무인(戊寅)이 된다. 그러면 아래에서 말할 같은 정화도, 축미충도 성립하지 않는다. 이 편은 통설(입춘)을 따른다. 다만 이 편의 명리 읽기가 통설 위에 서 있다는 것만은 밝혀 둔다. 22편에서 다시 보게 되듯, 한 사람의 해가 학설 하나로 갈리기도 한다.
두 사람의 천간이 같다. 둘 다 정화, 사람이 지핀 불이다. 큰불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쓰는 불이라서, 누구를 비추느냐가 전부인 불이다.
그리고 지지가 부딪힌다. 축(丑)과 미(未)는 충(沖)이다.
이 충을 풀면 이렇다.
겉으로는 같은 편끼리의 다툼인데,
속에서는 전혀 다른 것들이 싸운다.
두 사람 모두 고려의 신하였고, 둘 다 나라가 썩었다고 보았다. 겉은 같은 흙이다. 그런데 그 속에 품은 것이 달랐다.
이 충은 온도의 충돌로도 읽힌다. 축은 차고 젖은 흙이고, 미는 마르고 뜨거운 흙이다.
같은 불을 들고,
땅에서 부딪혔다.
축미충에는 창고가 열린다는 개고(開庫)의 풀이도 따라붙는다. 다만 이것은 학파마다 크게 갈리는 대목이라, 여기서는 단정하지 않는다.
다리 위에 선 사람과 다리를 건넌 사람
교황. 가르치는 자리. 그는 학문의 뼈대를 세운 사람이었다.
절제. 두 잔 사이로 물을 옮겨 붓는다. 한 발은 물에, 한 발은 땅에. 고치되 갈아엎지는 않는 자리다.
별. 재난이 지나간 뒤에 뜨는 카드. 그는 죽고 나서 오래도록 남았다.
전차. 혼자 고삐를 쥐고 밀고 나간다. 이 카드에는 함께 탄 사람이 없다.
악마. 스스로 감은 사슬.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있었다.
황제. 왕좌와 질서. 그가 끝내 앉은 자리다.
한 사람은 다리 위에 서 있었고,
한 사람은 다리를 건넜다.
절제 카드의 그림을 보면 한 발은 물에 담그고 한 발은 땅을 딛고 서 있다. 어느 쪽에도 온전히 서지 않은 자세다. 정몽주가 꼭 그 자리에 있었다. 고려도 아니고 조선도 아닌 자리.
그리고 그가 실제로 숨을 거둔 곳도 다리 위였다. 건너는 중이었다는 뜻이다.
이방원에게 악마 카드를 놓은 까닭은 하나다. 그 사슬은 그가 벗으려면 벗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가 정몽주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고, 형제들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건너다 잠기거나, 건너고 나서 어지럽거나
정몽주에게는 스물여덟 번째 괘, 택풍대과(大過)다. 들보가 휘는 괘다.
정몽주는 무너져 가는 집의 들보였다. 그리고 마지막 효의 넉 자가 결정적이다.
凶 无咎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죽었는데 잘못은 없다는 말이다. 예순네 괘를 통틀어 이보다 꼭 맞는 묘비명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역은 결과와 옳음을 따로 적는다. 진 쪽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이방원에게는 예순세 번째 괘, 수화기제(旣濟)다. 이미 건넌 괘다.
이 도감은 이 넉 자를 이렇게 읽는다. 다 이룬 순간부터 흐트러짐이 시작된다는 역설. 이미 건넌 사람이 할 일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올 근심을 미리 막는 것(思患而豫防之)이라는 것이다.
왕이 된 이방원이 한 일이 꼭 그것이었다. 왕비의 친정붙이를 없애고, 공신들을 정리하고, 군사를 제 손에 모았다. 다 건넌 다음에 오히려 더 두려워한 사람이다.
건너다 잠긴 들보와,
건너고 나서 더 두려워진 왕.
새 나라의 첫 사건은 재판 없는 살인이었다
먼저 이방원 쪽의 논리를 제대로 세워야 공평하다. 왕조를 갈아엎는 데에도 이론이 있었다.
이것은 억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식 학문이었다. 정몽주도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다.
그런데 선죽교는 그 이론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날 이방원에게는
어떤 공적인 권한도 없었다.
재판도, 죄목도, 절차도 없었다. 사람을 몽둥이로 쳐 죽인 것이다. 새 나라가 치른 첫 사건이, 재판 없는 살인이었다.
그리고 이 편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이 있다.
그를 죽인 쪽이
그를 충신으로 세웠다.
조선은 정몽주를 높였다. 벼슬을 내려 기리고, 학문의 줄기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왜 그랬을까.
답은 잔인할 만큼 실용적이다. 조선이 가장 두려워한 선례가, 바로 자기들이 만든 선례였기 때문이다. 신하가 왕조를 갈아치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한 번 되면, 다음에도 된다.
그래서 끝까지 마음을 바꾸지 않은 사람을 기려야 했다. 정몽주를 충신으로 세운 것은 조선의 도덕이라기보다, 조선이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비였다.
충성은 사람에게 하는가, 규칙에 하는가
정몽주를 망해 가는 왕조에 미련을 둔 사람으로 읽으면 이 편은 열리지 않는다. 그는 고려 왕실이 좋아서 남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킨 것은 왕이 아니라
신하가 왕을 갈아치울 수 없다는 규칙이었다.
왕이 아무리 형편없어도 그랬다. 규칙은 좋은 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때를 위해 있는 것이니까. 09편의 자베르와 같은 자리에 선 사람이다.
그리고 여기서 이 편의 가장 묘한 문장이 나온다.
원칙을 깨고 올라간 사람이,
그 원칙을 가장 단단히 세운다.
이방원은 선례를 만들어 왕이 되었다. 그리고 왕이 된 뒤에는 그 선례가 다시는 쓰이지 못하게 하는 데 평생을 썼다. 왕비의 친정붙이를 치고, 공신을 치고, 며느리의 친정까지 없앴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일관된 모습이다. 그 길이 얼마나 쉬운지 아는 사람은, 그 사람 하나뿐이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 편에는 나쁜 사람이 없다.
지금을 본 눈과
다음을 본 눈이 있었다.
둘 다 맞았다. 고려는 정말로 썩었고, 그 선례는 정말로 위험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 옳으면, 대개 한쪽이 죽는다.
실제로 있었던 일 앞에서도, 돋보기들의 말은 엇갈린다.
겉은 같은 흙끼리의 다툼이었고,
속은 전혀 다른 것들의 싸움이었다.
이 편의 돋보기들은 서로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깊이에서 말하고 있다. 명리는 두 사람이 얼마나 가까웠는지를 말하고, 법은 얼마나 달랐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가까울수록 크게 부딪친다.
둘 다 옳았고, 한쪽만 살아남았다
열여섯 사건을 놓고 보면, 규칙과 지금 가운데 무엇을 먼저 보느냐는 축이 다시 선다. 자베르도, 토니 스타크도 같은 자리에 섰다.
한 사람은 지금 썩어 가는 나라를 보았고,
한 사람은 다음에 올 선례를 보았다.
둘 다 옳았고, 옳은 쪽이 둘이면 대개 하나가 죽는다.
바꿔야 할 것은 분명한데
바꾸는 방법이 틀렸을 때,
너는 어느 쪽에 서는가.
두 사람 모두 고려가 썩었다는 것은 알았다. 싸움은 병을 알아보는 데서가 아니라 처방에서 났다. 지금도 대부분의 싸움이 그렇다.
이성계가 잘못한 게 아니다. 공이 많은 아들을 건너뛴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어린 아들을 향한 마음도, 새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는 결정이 피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방원에게는 이렇게 쓴다. 이방원은 괴물이 아니다. 그는 사람을 죽였으니 잘못한 게 아니라고는 쓸 수 없다. 다만 괴물이라고 불러 버리면 그는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존재가 되고, 그러면 배울 것이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한번 헤아려 볼 것. 네가 깨뜨린 규칙을, 너는 훗날 남에게 지키라고 하지 않았나.
이 화면에 대하여
실제로 있었던 일만으로 지어진 첫 편이다. 그래서 조심할 것이 많았다.
먼저 사주를 쓰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태어난 시각이 전하지 않아서 태어난 해의 간지(년주)만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천간이 둘 다 정화(丁火)이고, 지지가 축미충이었으니까. 명리 칸에서 본 대로 겉은 같은 흙끼리의 다툼인데 속은 전혀 다른 것들의 싸움이다.
다만 정몽주는 음력 섣달에 태어나, 동지를 새해로 치는 소수설로 세면 무인년이 된다. 그 경우 같은 정화도 축미충도 사라진다. 이 편은 입춘을 기준으로 하는 통설을 따랐고, 그 사실을 명리 항목 안에 적어 두었다.
하여가와 단심가는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워낙 유명하지만 판본마다 표기가 달라, 이 화면에서는 뜻만 풀었다.
법 항목에서는 이방원 쪽의 논리를 먼저 세웠다. 역성혁명과 맹자의 방벌론은 억지가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식 학문이었다. 그것을 빼고 쓰면 이 편은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대과 상육의 凶 无咎,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는 말이 정몽주의 묘비명이다. 주역은 결과와 옳음을 따로 적는다.
같은 칸, 같은 천간, 같은 카드와 괘를 받은 사람들은 도감 지도에 모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