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해부 · 08

열두 척과
도끼 한 자루

라스콜니코프 · 이순신 · 『죄와 벌』 × 난중일기 · 소설 × 역사

읽기 전 안내 · 이 글에는 작품의 주요 장면과 결말이 포함됩니다. 아래에서 바로 전체 글이 이어집니다.

읽기 안내 · 작품 장면과 해석을 나누어 봅니다

어디부터 읽어도 괜찮습니다

이번 글의 질문같은 계산도 그것이 향한 목적에 따라 왜 전혀 다른 선택이 될까?

작품 장면작품에 나온 사건·행동을 요약합니다.도입
인물 해석성격·심리·철학으로 선택을 읽습니다.MBTI심리철학
상징 읽기명리·타로·주역은 상징을 빌린 관점입니다.명리타로주역
제도 비교법·문화는 시대와 조건의 차이를 비교합니다.법·문화
자료와 편집 정보
다루는 작품
죄와 벌 × 역사
중심 인물
라스콜니코프 ↔ 이순신
글의 범위
작품 장면의 요약과 편집자의 해석입니다. 실제 사람의 진단이나 예측이 아닙니다.
작성·편집
사람 도감
화면 구성 점검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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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혼자서 모든 것을 셈했다.

같은 셈이 한쪽 끝에서는 도끼가 되었고, 다른 끝에서는 사람을 살리는 배가 되었다. 같은 칸에 서 있는데, 명리로 보면 칼과 풀이다. 그런데 두 사람의 끝은 이토록 멀리 갈라진다.

사건 개요 — 안 봐도 따라올 수 있게

라스콜니코프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는 이론 하나를 세운다. 비범한 사람은 선을 넘어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론을 자기 자신에게 시험해 본다. 전당포 노파를 죽인다.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증거도 없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무너져 내리고, 끝내 제 발로 걸어가 자수한다.

이순신은 조선의 장수다. 그리고 1597년, 단 한 해 동안 이런 일들이 모두 그에게 일어난다.

2월에 붙잡혀 가 고문을 받는다. 4월에는 모든 벼슬을 빼앗기고 병졸로 싸움터를 따라가라는 처분을 받는다. 옥에서 풀려나 남쪽으로 걷던 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다.

7월에 그를 대신해 싸우던 함대가 거의 다 부서진다. 8월에 그는 다시 수군의 우두머리가 된다. 남은 배는 열두 척이었다. 9월에 그 열두 척으로 이긴다. 그리고 10월에 아들이 죽는다.

그는 이 한 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에 적었다.

※ 라스콜니코프는 04편에서 혼자 다룬 적이 있다. 이번에는 마주 앉히는 자리라 보는 각도가 다르다.

이 둘, 뭔가 이상하다

라스콜니코프는 아무도 붙잡지 않는데 자수한다. 셈은 완벽했다. 그런데 그 셈이 그를 살리지 못했다.

이순신은 이기고도 일기에 자꾸 아프다고 적는다. 수많은 싸움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는 사람의 기록인데, 이긴 이야기보다 아픈 이야기가 더 많다.

두 사람 모두 셈이 맞았는데,
왜 둘 다 견디지 못했을까.

왜 일곱 갈래로 읽을까

두 사람을 일곱 개의 돋보기로 들여다본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소설 속 사람과 실제로 살았던 사람을 마주 앉혔다. 한 가지 성격이나 사건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않기 위해 선택·감정·상황·책임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비춰 본다. 어느 한 칸이 정답이거나 더 깊은 단계는 아니다.

수사 1 · MBTI이 사람 뭐 하는 사람인가

계산은 재능이 아니라 남은 수단이었다

두 사람 모두 INTJ다. 이 칸을 흔히 혼자서 모든 것을 셈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라스콜니코프INTJ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까지 옮긴다. 머릿속에서 끝내지 않는다는 것이 이 인물의 무서운 점이다.

이순신INTJ

물길, 조류, 배의 수, 적이 움직이는 길. 잴 수 있는 것은 모두 잰다.

흔히 INTJ를 똑똑한 유형이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소개하면 이 편은 위인전이 되고 만다. 그래서 눈길을 조금 앞으로 옮겨야 한다.

두 사람에게 셈은 처음부터 가진 수단이 아니었다.

라스콜니코프가난했고 외톨이였다. 말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좁은 방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가 이론이 나왔다
이순신임금이 들어 주지 않았다. 물길은 잴 수 있어도 임금의 마음은 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잴 수 있는 것만 쟀다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사람은 잴 수 있는 것을 재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어디서 갈라졌을까. 셈이 향한 방향에서다.

셈이 어디를 향하느냐가
두 사람을 갈랐다.

라스콜니코프가 끝까지 붙들고 푼 문제는 나는 비범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었다. 셈이 안쪽을 향해 있다. 이순신이 푼 문제는 저 물목에서 조류가 언제 바뀌는가 하는 것이었다. 셈이 바깥을 향해 있다.

안쪽을 향한 셈에는 답을 맞춰 볼 방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직접 해 보고 만다. 그것이 이 소설의 비극이다.

앞서 문동은은 사람을 셈했다. 셋을 나란히 놓으면, 같은 칸의 같은 재주가 얼마나 다르게 쓰일 수 있는지가 보인다.

수사 2 · 심리왜 그랬나

머리로 버틴 사람은 몸으로 청구서를 받는다

두 기록에 똑같이 나오는 것이 하나 있다. 몸이 먼저 무너진다는 것이다.

라스콜니코프일을 저지르자마자 열병으로 앓아눕는다. 며칠을 정신없이 보낸다
이순신일기에 토했다, 식은땀이 났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거듭 나온다

머리로 버틴 사람은
끝내 몸으로 값을 치른다.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몸이 대신 말할 때가 있다. 특히 말할 데가 없는 사람에게 자주 그렇다. 두 사람 모두 꼭 그런 처지에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생긴다.

앓는 것은 같았다.
다른 것은 종이 한 장이었다.

이순신은 아픈 날에도 그날의 일을 적었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에도 적었고, 그다음 날에도 적었다. 울지 않으려고 애쓴 흔적이 문장 곳곳에 남아 있다.

라스콜니코프는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가, 결국 말을 하려고 경찰서로 걸어간다.

그의 자수는 뉘우침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혼자 들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에 가깝다.

수사 3 · 명리어떤 사람인가

칼과 풀

이 편에는 읽는 법이 두 가지 섞여 있다. 소설 속 인물은 천간의 물상으로 읽고, 실제로 살았던 사람은 태어난 해의 간지로 읽는다. 뒤의 16편과 32편도 이 원칙을 따른다.

라스콜니코프신금 辛金 · 칼날

불을 지나 다듬어진 쇠. 정확하고 날카로운데, 쉽게 상한다.

이순신1545년 · 을사 乙巳

천간은 을목, 풀과 덩굴이다. 부드럽지만 밟혀도 다시 일어난다.

명리에서 신금과 을목은 서로 부딪히는 사이다. 을신충이라고 한다. 낫과 새싹에 견주면 알기 쉽다. 날 선 쇠가 가장 여린 것을 상하게 하는 모양이다. 같은 칸에 선 두 사람이, 명리로는 칼과 풀로 마주 선 셈이다.

그런데 옛 책 《적천수》는 이 여린 풀을 두고 뜻밖의 말로 시작한다.

적천수乙木雖柔 刲羊解牛 — 을목은 비록 부드러우나, 양을 가르고 소를 잡는다

이 도감은 이를, 메마른 여름 흙에도 언 겨울 흙에도 뿌리내린다는 뜻으로 읽는다. 약한 글자라는 통념을 원전이 먼저 뒤집는 구절이다. 이순신이 꼭 그랬다. 두 번이나 벼슬을 빼앗기고 흰옷 입은 병졸로 떨어졌지만, 두 번 다 그 자리에서 다시 뿌리를 내렸다.

칼은 제 손을 베었고,
풀은 밟혀도 두 번 일어났다.

신금은 자기 자신도 벨 수 있는 쇠다. 라스콜니코프의 칼은 밖으로 나갔다가 제게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그 칼을 씻어 줄 물이 그에게는 오래도록 없었다. 소설 뒷부분에 가서야 그에게 물이 되어 주는 사람이 나타난다.

이순신 쪽에는 한 겹을 더 얹을 수 있다. 1597년은 정유년(丁酉)이다. 그해의 침략에는 아예 정유재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간지가 그대로 사건의 이름이 된 해다.

유(酉)의 뜻가을 쇠의 한복판. 거두고, 가리고, 심판하는 자리. 여문 것은 거두고 쭉정이는 골라낸다

그리고 《적천수》의 을목 구절에는 이런 대목이 이어진다.

적천수懷丁抱丙 跨鳳乘猴 — 정화를 품고 병화를 안으면, 봉황을 타고 원숭이를 탄다

풀어 말하면, 풀이 제 안에 불을 품고 있으면 쇠가 가장 사나운 가을의 살기조차 두렵지 않다는 뜻이다. 여기서 봉황은 유(酉)를 가리킨다. 정유년이라는 그해의 이름 안에, 정(丁)이라는 불과 유(酉)라는 봉황이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다만 이 도감은 이런 겹침을 운명으로 읽지 않는다. 간지는 예순 개뿐이라 겹침은 흔하다. 그해에 그가 모든 것을 잃었다가 다시 일어선 것은 간지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 일 때문이었다.

이순신은 태어난 날까지 전하지만 태어난 시각은 설이 갈린다. 그래서 사주 전체는 쓰지 않고 태어난 해의 간지만 보았다.

수사 4 · 타로지금 어디 있나

무너졌다 일어나거나, 무너지지 않으려 하거나

라스콜니코프은둔자 → 탑 → 심판

은둔자. 등불을 들고 홀로 선 노인. 그는 그 방에 몇 달을 누워 있었다.

탑. 번개 한 줄기에 무너진다. 애초에 잘못 쌓은 것이 무너지는 카드다.

심판. 나팔 소리에 무덤이 열린다. 제 발로 걸어 나간 날이다.

이순신매달린 사람 → 달 → 절제

매달린 사람. 거꾸로 매달려 멈춘다. 벌이 아니라 멈춤을 뜻하는 카드다. 그는 벼슬을 빼앗기고 병졸로 따라간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달. 밤바다, 보이지 않는 길. 그리고 조류를 만드는 것이 바로 달이다.

절제. 두 잔 사이로 물을 옮겨 붓는다. 한 발은 물에, 한 발은 땅에. 끓어오르지 않고 오래 가는 카드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날마다 썼다.

달 카드는 이순신에게 두 번 들어맞는다. 그림으로는 보이지 않는 길이고, 실제로는 밀물과 썰물을 만드는 별이다. 명량의 싸움이 물때를 다투는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이 카드는 비유라기보다 사실에 가깝다.

매달린 사람 카드는 기택에게도 나왔다. 기택은 매달린 채로 이야기가 끝났고, 이순신은 두 번 매달렸다가 두 번 내려왔다. 같은 카드가 한쪽에는 끝이고, 한쪽에는 지나가는 길목이다.

수사 5 · 주역어떻게 했어야 하나

돌아오라, 그리고 규율로 나가라

라스콜니코프에게는 스물네 번째 괘, 지뢰복(復)이다. 땅 아래 우레가 하나 있다. 맨 아래 한 자리가 양으로 돌아오는 괘, 바닥에서 방향이 바뀌는 자리다.

초구不遠復 无祗悔 元吉 — 멀리 가기 전에 돌아온다. 크게 길하다

복괘가 하는 말은 하나다. 돌아오는 데에도 때가 있다는 것. 멀리 가기 전에 돌아오면 크게 길하고, 멀리 간 뒤에 돌아오면 치러야 할 값이 커진다. 그는 멀리 간 뒤에야 돌아왔다.

이순신에게는 일곱 번째 괘, 지수사(師)다. 땅 아래에 물이 있는 모양, 군대의 괘다.

괘사師貞 丈人吉 无咎 — 군대는 바르게 움직여야 하고, 장인(丈人)이 이끌어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초육師出以律 否臧凶 — 군대가 나설 때는 규율로써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좋아도 흉하다

장인(丈人)이란 나이를 먹고 두루 겪어 본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한 것은 서른둘이었다. 또래보다 한참 늦은 출발이었다. 늦은 사람에게 이 괘가 붙는 것이 우연 같지만은 않다.

그리고 초육의 否臧凶. 규율 없이 나서면 결과가 좋아도 흉하다는 말이다.

이겼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 줄이 정말로 필요했던 사람은 이순신이 아니라 라스콜니코프였다. 그는 규율 없이 나섰다. 혼자 세운 이론은 규율이 아니다. 규율이란 나 말고 다른 사람도 함께 지켜야 하는 것이니까. 혼자 만들고 혼자 지키는 것은 규율이라기보다 핑계에 가깝다.

한쪽에는 돌아오라,
다른 쪽에는 규율로 나서라.

수사 6 · 법·문화다른 데였다면 어떻게 됐나

벌을 찾아간 사람과, 벌을 받고도 남은 사람

04편에서는 법이 왜 자수한 사람의 형을 덜어 주는지를 보았다. 이번에는 반대쪽을 본다. 백의종군이라는 처분이다.

백의종군벼슬을 모두 떼어 내되 군을 떠나지는 못하게 하는 처분. 흰옷을 입고 병졸로 따라간다

묘한 처분이다. 벌이면서 벌이 아니고, 용서이면서 용서도 아니다. 쫓아내지는 않고, 그렇다고 제자리에 두지도 않는다. 오늘날의 어떤 징계와도 꼭 들어맞지 않는다.

이순신은 이 처분을 두 번 받았다. 1587년에 한 번, 1597년에 또 한 번.

벌을 찾아간 사람과,
벌을 받고도 떠나지 않은 사람.

라스콜니코프는 아무도 그를 찾지 않는데 제 발로 걸어가 죄를 털어놓았다. 이순신은 자기가 짓지 않은 죄로 벌을 받고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방향은 정반대인데, 두 사람 모두 벌을 피하지 않았다는 점은 같다.

이순신은 글로 싸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끊임없이 임금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널리 알려진 열두 척이라는 말도 싸움터에서 외친 소리가 아니라, 임금에게 올린 글 속의 문장으로 전해진다.

싸움은 바다에서 했지만, 싸울 자격은 종이 위에서 지켰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옳은 것과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고, 둘 다 해야 지켜진다.

끝으로 오늘을 향한 물음 하나. 지금 백의종군 같은 처분이 가능할까.

요즘은 대개 자르거나, 그냥 두거나 둘 가운데 하나다. 그 사이가 거의 없다. 잘못은 물어야 하는데 사람은 꼭 필요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 번쯤 헤아려 볼 만하다.

수사 7 · 철학그래서 옳은가

아무도 안 읽을 글을 칠 년간 매일 썼다

04편의 마지막 물음은 계산은 맞았을까였다. 이 편의 물음은 그보다 한 걸음 더 앞에 있다.

그는 왜 일기를 썼을까.

이순신에게는 이미 공식 기록이 있었다. 임금에게 보고서를 줄곧 올렸으니까. 그렇다면 『난중일기』는 누구에게 쓴 글이었을까.

임금이 읽을 글은 아니었다. 뒷날에 남기려고 썼다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들이 적혀 있다. 누가 다녀갔고, 비가 왔고, 몸이 좋지 않았고, 잠을 설쳤다는 말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칠 년 동안 날마다 썼다.

이것이 이 편의 마지막 열쇠다. 그는 날마다, 아무도 아닌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말할 데가 없는 사람이 고른 길이 종이였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반대로 했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무너졌다.

한 사람은 입을 다물어 병이 났고,
한 사람은 종이에 대고 말해서 살았다.

여기까지의 사건들을 나란히 놓으면 한 줄의 축이 보인다. 말했느냐는 축이다.

뫼르소01 — 말하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04 — 오래 참다가 한꺼번에 말했다
문동은06 — 말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았다
김독자05 — 말하기 위해 사람을 모았다
이순신날마다 종이에 대고 말했다

같은 돋보기로 거듭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저절로 한 줄로 늘어선다. 그리고 그 줄의 이름이 하필이면 말이다.

수사 회의 — 도구들이 서로 안 맞는다

소설 속 사람과 실제로 살았던 사람 앞에서, 돋보기들도 편이 갈린다.

MBTI같은 칸이에요. 둘 다 혼자 다 셈하는 사람입니다.
주역그런데 처방은 반대예요. 한 사람에게는 돌아오라, 한 사람에게는 규율로 나가라.
명리칼과 풀이지요. 칼은 제 손을 베었고, 풀은 밟혀도 두 번 일어났습니다.
타로한쪽은 무너졌다가 일어나고, 한쪽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팁니다.
심리둘 다 몸이 먼저 앓았어요. 머리로 버틴 사람은 몸으로 값을 치르거든요.
철학앓은 것은 같았소. 한 사람에게만 날마다 적는 종이가 있었을 뿐이오.
이순신(싸움이 없는 밤에도, 등잔 아래서 그날의 일기를 적는다)

같은 칸이었는데
쓰는 법이 달랐다.

돋보기들이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칸이 같다고 결과까지 같지는 않다는 것을 일곱 가지 말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이 도감이 점집이 아닌 까닭도 거기 있다.

종합 프로파일

안쪽을 셈한 머리와, 물길을 셈한 머리

하늘 몫라스콜니코프 — 그 가난, 그 방, 그 시대 · 이순신 — 그 전쟁, 그 임금, 서른둘의 늦은 출발
갈림길라스콜니코프 — 선을 넘을 것인가 · 이순신 — 열두 척으로 나설 것인가
내 몫라스콜니코프 — 제 발로 걸어가 말한 것 · 이순신 — 아픈 날에도 날마다 쓴 것

여덟 사건을 나란히 놓으면 말했느냐는 축이 또렷해진다. 이 도감에서 무너진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모두 혼자서 들고 있었다.

한 줄 프로파일

같은 머리로 한 사람은 자기를 셈했고,
한 사람은 물길을 셈했다.
두 사람을 가른 것은 머리가 아니라, 셈이 향한 쪽이었다.

그리고 거울 바꿀 수 없는 것 앞에서,
너는 무엇을 재기 시작하나.

그리고 하나 더. 네가 진 날의 기록은 어디에 있나. 『난중일기』에는 이긴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다. 이긴 날의 기록만 남기는 사람은, 진 날에 혼자가 된다.

끝으로 이 말은 해 두어야 한다. 선조가 잘못한 게 아니다. 왕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백성이 가장 사랑하는 장수는 임금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그 두려움에는 까닭이 있었다.

그 두려움이 옳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그런 두려움이 생긴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빼 버리면 이 편은 위인전이 되고, 위인전이 되면 더는 배울 것이 없어진다.

대표 관계

내가 지키는 것은 생각일까, 사람일까

라스콜니코프 ↔ 이순신과 자베르 ↔ 장발장의 선택이 어디에서 닮고 갈리는지 따라갑니다.

이 화면에 대하여

소설 속 인물과 실제로 살았던 사람을 처음으로 마주 앉힌 편이다. 그래서 읽는 법을 둘로 나누었다. 소설 속 인물은 천간의 물상으로, 실제 인물은 실제 간지로 읽는다.

다만 이순신의 사주는 쓰지 않았다. 태어난 시각을 두고 설이 갈리기 때문이다.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사람을 풀면, 그것은 해석이 아니라 지어내기가 된다. 대신 태어난 해가 1545년 을사년이고 1597년이 정유년이라는,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간지만 썼다.

『난중일기』는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이 화면의 서술은 모두 뜻을 줄인 것이다. 명량의 조류 이용이나 쇠사슬 이야기처럼 학계에서 설이 갈리는 대목은 단정하지 않았다.

같은 칸, 같은 천간, 같은 카드와 괘를 받은 사람들은 도감 지도에 모아 두었다.